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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기고] “윤한덕의 ‘고통’을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기사입력  2019/02/09 [07:56]   Q방송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기고
‘계란으로 바위 치는’…그는 그저 같은 일을 했다
병든 응급의료 떠받치던 ‘아틀라스’ 윤한덕은
응급의료 개선 서류를 끝까지 잡고 있다가
단단하게 의자에 앉은 채 세상을 떠나갔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지난 4일 숨진 채 발견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기리는 글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이국종 교수는 ‘윤한덕 선생님은 제가 감히 제 짧은 글로써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입니다. 제가 글로 함부로 표현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을지 걱정’이라면서 여러차례 기고를 거절했지만 <한겨레>의 거듭된 요청 끝에 기고를 결심했다. 이하는 이 교수의 글 전문이다.

 

 

 

 

 

 
1. 의학자 윤한덕

 

2008년, 런던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보건복지부 내 회의실에서 영국의 중증외상환자 치료 체계에 대해 발표했다. 외상센터 설립과 함께 헬리콥터를 이용한 항공의료 체계를 발표했을 때,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응급의료인 대부분이 반대했다. 내가 익숙하게 듣고 있던 말이 쏟아졌다. “여기가 선진국인 줄 알아?” “한국은 도시에 인구 밀집도가 높아서 불가능해!” “우리 의료 현실을 생각해야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군 생활할 때 헬리콥터의 하향풍에 주위 건물의 유리창이 다 깨지고 트럭이 뒤집히는 것을 보았다”는 허풍까지 난무했다. 그러나 윤한덕 만이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내가 내민 영·미권에서 출간된 외상학 교과서들과 런던에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세밀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의사이기 이전에 의학자로서, 어떤 의과대학 교수보다도 더욱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여, 선진국에서 보편화하여 있는 “교과서적인 프로토콜(protocol)”을 알고자 애썼다. 한국에서 생산될 수 있는 중증외상환자 자료라는 것들의 수준이 그저 현실의 참상을 확인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는 최선을 다해서 한국 응급의료의 블랙홀이나 마찬가지인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나섰다.
 

 

그가 추구해 왔던 많은 응급의료 관련 정책들은 이처럼 어떠한 정치적 목적이나 자신의 입신양명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다만 세계적 진료지침(Global Standard)을 준수하면서 얻어진 객관적인 환자치료 데이터를 통해 정책의 효용성을 증명하는 수순을 밟아왔다.
 

 

 

2. 지옥 속 윤한덕

 

그러나 이것은 시도에 불과했다. 윤한덕이 원하는,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려면 한국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자신이 피투성이 싸움을 하다시피 해서 확보한 금쪽같은 예산이 현장에 내려가서 뒤틀려 날아가는 것을 계속 보던 윤한덕이 내게 물었다. “국종, 한국 사회 정도의 투명성(transparancy)을 가지고는 정말 이거밖에는 안되는 거야?”
 

 

그는 기가 막힌 상황이 닥치거나 내게 진정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내 성을 떼어내고 이름을 불렀다. “국종” 그가 나를 처음 그렇게 불렀던 상황은 내가 “아덴만의 여명 작전”에 투입되야 해서 그와의 회의 일정을 펑크냈을 때였다. 그때 그가 말했다. “국종, 석해균 선장 잘못되면 어떻게 박살 나게 될지 알지?”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는 2주 전 쯤에 만난 회의 때 헤어지면서 내가 아픈 걸 걱정하며 한 말이었다. “국종, 올해도 잘 넘겨야 할 텐데, 힘내!”
 

 

그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였다. 전공의 수련 기간 중 외과계 중환자들이 응급실에서 죽어 나가는 모습을 너무 많이, 지겹게 봐왔다고 했다.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각 임상 과목 간의 빠른 협진은 고사하고, 생명이 위급한 외과계 응급환자가 병원 문턱을 넘어온 이후에도 적절히 치료받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윤한덕은 그때의 응급실을 ‘지옥’ 그 자체로 기억하고 있었다. 20여년이 훨씬 지난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이놈의 말도 안 되는 응급실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에 난항을 보인다는 사실에 그는 괴로워했다. 나는 윤한덕이 이러한 고통을 어떻게 달고 살아가는지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나 윤한덕이나 퇴로가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홀가분했다. 우리는 최소한 방향성을 잃을 가능성은 적었다.
 

 

 

조문객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빈소를 찾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6시께 자신의 사무실에서 심장이 멈춘 상태로 발견된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큰 기여를 했다. 연합뉴스

 

 
3. 사심없는 윤한덕

 

지옥을 헤매본 사람은 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도망치거나 순응하거나, 그 모두가 아니라면 판을 뒤집는 것. 떠나는 것도 익숙해지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나 세 번째 선택은 무모하다. 그런데도 윤한덕은 셋 중 마지막을 택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맡아 전국 응급의료의 수준을 끌어올리려했다.

 

세인들은 윤한덕의 센터장 직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센터장”이라는 단어가 울려내는 소리만이 그럴듯해 보일 뿐이다. 해마다 배출되는 3000여명이 훨씬 넘는 의사 중 극소수만이 응급의료 계통에 뛰어든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고 힘든 의과대학 과정을 마친 의사들에게 그 누구도 어떤 전공을 강요할 수 없다. 그 와중에 윤한덕은 전공의 수련과정이 막 시작된 응급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전문의가 된 이후 통상적인 임상 의사의 길을 갔다면, 자신이 취업하고 있는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시간만 지키며 일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밖에 집에 못 가는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은 급여임에도 일단은 공직의 길에 들어섰으니 입신양명이라도 하고자 했다면, 그는 보건복지부에서 통상적인 행정관료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응급의료 분야에서만 일할 수 없고 1~2년이 멀다 하고 근무처를 옮겨 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보건복지부의 산하기관인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자신을 묻으며 관계(官界)에서의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살았다. 그는 그저 같은 일을 계속 해왔다. 그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았다.
 

 

 

4. 행정가 윤한덕

 

윤한덕은 임상 의사로서 응급의료를 실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응급의료 현장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목소리들의 경중과 화급을 잘 구별하여, 보건복지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왔다. 과정에서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수많은 갈등구조 속에서도 평정심을 잘 유지해 나간 행정가였다. 아니, 평정심을 잘 유지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뛰어난 행정가였다.
 
여리고 인간적인 그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호탕하게 큰 웃음으로 정신적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많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윤한덕은 그런 식으로 자신이 품고 있는 중압감을 해소하기에는 떠안고 있는 짐이 너무나 컸다. 위기 때마다 자신의 목을 걸어놓고 배수의 진까지 치고 달려드는 그 특유의 해결방식 덕에 한국의 응급의료 전반은 손톱 끝만큼씩이라도 개선되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그의 가슴은 썩어들어 갔다. 자신이 피투성이 싸움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확보한 예산이나 정책 지원 등이 의료 현장에서 병원들이나 때로는 의료인들의 이권 속으로 타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자기 몸뚱이가 타들어 가는 것과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았다. 차라리 극도로 피곤해야 잠을 이루었다. 대부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5. 영웅 윤한덕

 

1년이 멀다 하고 보건복지부의 담당자들이 바뀌며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국립의료원장이 바뀌거나, 국회의 다수당이 바뀌거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변화하며 쏟아져 내려오는 각기 다른 정책적 포커스 속에서도 그는 자기 자리를 지켰다. 명문 국립 의과대학 졸업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세속적인 털끝만 한 이득조차 취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일평생을 살았다.
 

 

그가 진정 스스로를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가망 없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끝까지 적과 맞서는” 영웅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그의 곁에 서 있으면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한국사회의 흐름이 “삶의 질” 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전환했고, 정치권과 정부를 비롯한 사회 공적 영역의 방향과 정반대로 내달리며 그는 스스로를 부셔서라도 다가올 미래에 조금의 긍정적인 변화라도 끌어내고자 했다.
 

 

그는 그의 인생 전부를 걸고 중증외상치료체계를 포함한 응급의료체계 선진화를 위해서만 살았다. 그 이외에 그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것은 제대로 된 구동장치를 가지고 있는 소형 프라모델 항공기를 날리는 것뿐이었다. 신제품으로 출시된 3g도 안 되는 무선조종 비행기용 서보(servo) 장치의 성능을 열정적으로 내게 설명하던 윤한덕을 잊을 수 없다. 그의 비행체에 대한 열정이 내가 실제로 타고 비행하는 응급의료용 헬리콥터에까지 스며들어 기존의 소극적 비행 관행을 깨도록 유도해 주었다. 현재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 어느 곳에도 윤한덕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부분은 없다. 우리는 윤한덕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6. 슬픈 윤한덕

 

천신만고 끝에 확보된 예산과 각 지역 병원들의 지원으로 펼쳐나갔던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길목마다 걸리고 좌초되는 현장을 직접 목도하자 그는 수차례 해당 외상센터의 장들과 소속 병원장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다. 무의미한 말들만 오가다 파장된 회의. 당시 일그러진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윤한덕의 입가에서 차가운 말이 새어 나왔다. “2018년 이후에 이 사업이 잘도 계속 가겠구나….”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응급의료의 구석구석까지 들여다보며 그 수준을 끌어 올리고자 했지만 그의 눈높이에 맞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는 초조해졌다. 언젠가부터 그는 외로워 보였고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윤한덕의 시선이 허공에 머물고 있음을 봤던 최근에 나는 마음이 무너져 버리는 듯했다. 그리고 윤한덕을 계속 밀어붙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중앙에서 버티어 주셔야 합니다.”
 

 

그때 윤한덕의 모습은 응급의료라는 병든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지친 아틀라스(Atlas) 같아 보였다. 나는 윤한덕의 요청으로 김지영 간호사를 그에게 18개월 동안 파견해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 그에게 다급한 지원을 요청하는 신세에 불과했다.
 

 

해마다 몇백억 이상의 예산을 집행 해 나가는 윤한덕은 정작 휘하 직원들 몇 명을 정규직으로 확보하는 것에도 허리가 꺾였다. 윤한덕이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이 다투어 그의 공을 치하하고 개선책을 결의에 찬 모습으로 발표하고 있는것을 보고 들으며 난 기가 막혔다. 지금 앞다투어 발표하는 그 결연한 계획들의 10분의 1이라도 몇 달 전에 집행해 주었으면 윤한덕은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럴 일은 없다. 어차피 윤한덕이 떠나간 사실도 며칠 뒤면 언론에서 사라질 것이고 쏟아져 나왔던 각종 대책 및 결연한 ‘결심’들도 곧 날아갈 것이다. 그건 이제는 하늘에 있는 윤한덕이 더 잘 알고 있다. 상당히 ‘쿨’(Cool)한 면모를 보이는 그는 아마 씩 웃으면서 이럴 것이다.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 그래도 난 이렇게 살다 갈 거야!”
 

 

2019년이 시작된 그놈의 “민족의 명절” 에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영웅을 잃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심 없이 스스로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 온갖 슬픔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최후까지 피투성이 싸움을 하다가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공간에서 단단하게 앉은 채 세상을 떠나갔다. 세상을 떠날 때조차 그는 한가하게 누워서 쉬지 않았고, 그다지 슬퍼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응급의료체계 개선안에 대한 서류들을 끝까지 잡고 있다가 함께 가지고 갔다.
 

 

윤한덕의 나이 5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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